카테고리 없음

9. 보이지 않는 광선, 방사능의 발견과 베크렐의 우연

k-지음 2025. 7. 28. 12:00
반응형

모든 게 완벽했던 시절에 날아든 'X선'

앙리 베크렐

과학의 역사를 보면, 가끔은 모든 퍼즐 조각이 거의 다 맞춰졌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19세기말 물리학이 바로 그랬죠. 뉴턴 이래로 모든 게 완벽하게 설명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바로 그 평온함 속으로 1895년, 빌헬름 뢴트겐이라는 과학자가 'X선'이라는 아주 이상한 폭탄을 던져 넣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뼈를 찍어내는 광선이라니, 세상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죠.

오늘의 주인공, 앙리 베크렐도 이 미지의 광선에 완전히 매료된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사실 그의 집안은 할아버지부터 아버지까지, 빛과 '인광(빛을 머금었다가 어둠 속에서 뿜어내는 현상)'을 연구해 온 과학계의 '로열패밀리'였어요. 그러니 베크렐이 "어? 혹시 X선이라는 것도 인광 물질이랑 관련 있는 거 아냐?"라고 생각한 건 어쩌면 당연한 운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몰랐습니다. 자신의 그 호기심이 인류의 운명을 바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실수'의 첫걸음이 될 줄은 말이죠.


인광 물질


과학계 로열패밀리의 그럴싸한 계획

베크렐의 계획은 아주 심플하고 그럴싸했습니다. "햇빛을 쨍쨍하게 쬐어준 우라늄 염(아주 강력한 인광 물질이거든요)을 검은 종이로 싼 사진 건판 위에 올려두자. 만약 여기서 X선 같은 게 나온다면, 종이를 뚫고 사진에 흔적을 남기겠지?" 라는 생각이었죠.

그리고, 빙고! 그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습니다. 며칠 뒤 현상한 사진 건판에는 흐릿하지만 분명한 우라늄 결정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베크렐은 기뻤을 겁니다. '역시 내 가설이 맞았어!' 라고 생각하며 이 발견을 학계에 보고했죠. 여기까지는 모든 것이 그의 계획대로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 보였습니다.


운명의 장난, 어두운 서랍 속의 기적

하지만 여기서 운명의 신은 장난을 치기 시작합니다. 1896년 2월의 마지막 주, 파리의 하늘은 며칠째 잔뜩 심술을 부리며 햇빛 한 줌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태양이 없으면 실험을 할 수 없으니, 베크렐은 짜증 섞인 한숨과 함께 아직 쓰지 않은 우라늄 염과 새 사진 건판을 아무렇게나 서랍 속에 휙 던져 넣고는 날이 개기만 기다렸습니다.

며칠이 흐른 3월 1일. 여전히 날은 흐렸지만, 그는 무슨 생각에선지 서랍 속의 사진 건판을 꺼내 현상해 보기로 합니다. '당연히 아무것도 안 찍혔겠지'라고 생각하면서요.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요? 사진 건판에는 햇빛을 실컷 쬐었을 때보다 훨씬 더, 비교도 안 될 만큼 선명한 우라늄의 실루엣이 찍혀 있었습니다.

베크렐은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을 겁니다. "아니, 햇빛도 없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그의 머릿속에서 모든 가설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라늄은 햇빛의 에너지를 빌리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 돌멩이 자체가, 스스로, 아무런 도움 없이도 강력한 에너지를 미친 듯이 뿜어내고 있었던 겁니다!


세상을 바꾼 위대한 '실수'

흐린 날씨와 무심코 던져둔 서랍. 이 사소한 우연이 없었다면 베크렐은 어쩌면 자신의 첫 가설이 맞다고 믿은 채 이 위대한 발견을 그대로 지나쳤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발견한 '우라늄 방사선'은 원자가 영원불멸의 존재가 아니라는, 스스로 붕괴하며 에너지를 내놓을 수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암시했습니다.

이 작은 발견 하나가, 인류가 원자를 바라보는 방식을 영원히 바꿔놓았습니다. 곧이어 마리 퀴리 부부가 이 현상에 '방사능'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새로운 원소들을 찾아냈고, 인류는 원자력이라는 새로운 불을 손에 쥐게 되었죠. 어쩌면 우리 삶의 가장 위대한 발견도,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어느 날, 무심코 열어본 서랍 속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반응형